영화 가타카(Gattaca)는 1997년에 개봉한 공상과학(SF) 영화로, 유전자가 인간의 사회적 지위와 미래를 결정짓는 디스토피아적 사회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미래예측이 아닌, 인간의 본질과 윤리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며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습니다. 특히 2020년대에 들어 유전자 편집 기술(CRISPR 등)이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영화 속 상상이 현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기대가 동시에 커지고 있습니다. 가타카는 기술과 인간 사이의 경계, 그리고 인간다움의 의미를 되묻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다시 조명하고, 현재 과학기술의 현실성과 윤리 문제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유전자에 의한 계급사회
가타카의 세계는 유전자 정보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극단적인 형태의 기술사회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유전자 검사를 통해 지능, 체력, 질병 유무, 수명 등이 분석되고, 이 정보는 국가나 사회 시스템에 등록되어 해당 아이의 인생 경로를 사실상 결정짓습니다. 유전자가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적격자(Valid)’는 고소득 직종이나 엘리트 코스를 밟는 반면, 자연출생으로 선별되지 않은 ‘부적격자(In-valid)’는 저임금 노동이나 비전문직에 종사하며 사회적 차별을 받습니다.
주인공 빈센트는 선천적으로 심장질환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부적격자입니다. 그는 우주 비행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적격자 제롬의 유전자 정보를 훔쳐 신분을 위조하고 가타카 항공우주국에 취업하게 됩니다. 매일 손톱, 머리카락, 피부세포 등을 치우고 DNA 흔적을 제거하며 자신의 정체를 숨깁니다. 영화는 결국 빈센트가 우주로 떠나는 데 성공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의지, 노력, 꿈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가타카는 과학이 인간의 가능성을 억압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인간의 본질은 유전자가 아니라 ‘선택’과 ‘행동’에 있음을 설파합니다.
현실에서의 유전자기술
현재의 유전자 기술은 영화 가타카에서 상상한 것과 놀랍도록 유사한 수준까지 도달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CRISPR-Cas9 기술입니다. 이 기술은 특정 유전자를 정밀하게 절단하거나 삽입할 수 있는 기술로, 인간의 유전병을 치료하거나 질병 발생 가능성을 낮추는 데 활용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유전 질환, 예를 들어 낭포성 섬유증이나 겸상 적혈구 빈혈 등은 CRISPR를 통해 치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암세포 제거에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또한, DTC(Direct To Consumer) 유전자 분석 서비스도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서비스는 소비자가 타액 등을 보내면 자신의 건강 위험 요소, 체질, 식이요법, 심지어 성격 경향까지 분석해 주는 것으로, 이미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상용화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빠른 기술 발전에는 항상 그림자가 존재합니다. 유전자 데이터가 상업적으로 유출되거나, 보험 가입 거부, 취업 차별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특정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고르는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까지 논의되고 있어, 사회적·윤리적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가타카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현실의 중요한 경고이자 토론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성의 의미, 기술과 윤리의 경계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은 유전자로 규정되는 존재인가?’ 영화 가타카는 이에 대한 강력한 반론을 제시합니다. 유전적으로 ‘열등’한 인간이 더 큰 꿈을 꾸고, 더 강한 의지를 발휘하며, 결과적으로 사회가 규정한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가치는 유전자 외적 요소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빈센트는 유전자 스펙만 보면 하찮은 존재이지만, 끊임없는 자기 관리와 노력, 그리고 꿈을 향한 집념으로 누구보다 강한 인간으로 성장합니다. 반면 완벽한 유전자를 가진 제롬은 현실에 실망하고 절망에 빠지며, 기술이 결코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현대 사회는 점점 ‘보이는 수치’에 의존하고 있으며, 유전자 정보 또한 하나의 지표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히 데이터를 모은 존재가 아니라, 감정, 의지, 선택, 그리고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하는 존재입니다. 유전자는 하나의 정보일 뿐이지,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윤리적 기준 없이 유전자 기술이 무분별하게 사용된다면, 결국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인종차별, 계급사회, 생명 차별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기술은 선택이지만, 인간의 존엄은 선택이 아닙니다. 가타카는 그 점을 우리에게 강력하게 상기시키는 영화입니다.
영화 가타카는 유전자 기술의 발전이 인간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예측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유전자는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지만, 그 가능성에 우열을 매기고 차별을 부여하는 순간, 인간 사회는 깊은 윤리적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며,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입니다. 윤리와 존엄,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시대, 우리는 가타카가 전하는 메시지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