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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들린다" 감정 변화, 첫사랑,성장

by venicecode 2025. 7. 11.

바다가들린다 포스터
"바다가들린다" 포스터

 

 

지브리 스튜디오의 1993년 작품 「바다가 들린다」는 소소한 갈등 속에서 주인공들의 감정 변화와 내면 성장을 섬세하게 풀어낸 청춘 애니메이션이다. 흔히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보여주는 화려한 판타지와는 다른 분위기지만, 오히려 현실의 청춘이 겪는 감정적 진폭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이 글에서는 작품 속 두 주인공인 무타 마코토와 무토 리카코의 심리 상태와 감정 변화를 중심으로, 그들이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감정 변화와 거리감의 심리

 

작품의 시작부터 무타는 리카코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그 감정은 단순한 호감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리카코는 전학 온 첫날부터 도시적인 외모와 차가운 태도로 주변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인물이다. 무타는 그녀의 행동에 불쾌함을 느끼면서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계속 그녀에게 시선을 두게 된다. 무타의 이러한 감정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감정적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리카코의 말을 곱씹고, 그녀의 행동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신경 쓰기 시작한다. 리카코는 도쿄에서 시코쿠로 전학 오면서 겪는 문화적 차이와 가족 문제로 인해 매우 방어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그녀의 차가움은 사실 내면의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타는 그런 리카코를 도우면서도, 그녀의 오만하고 예민한 태도에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를 완전히 외면하지 못한다. 리카코가 보이는 불안한 눈빛과 불완전한 감정 표현은 무타에게 계속해서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감정 변화는 말로 표현되기보다는 행동 속에서 드러난다. 무타는 리카코의 부탁을 받아들여 도쿄까지 동행하고, 그녀의 비밀을 지켜주는 한편, 친구들에게 오해를 받으며 갈등을 겪는다. 리카코는 그런 무타의 행동에 직접적인 감사를 표현하지 않지만, 그녀의 눈빛과 말투에는 무언가 미묘한 감정이 숨어 있다. 두 사람은 겉으로는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감정적으로는 점점 더 얽혀가는 중이다.

 

첫사랑 심리와 표현의 미숙함

 

무타와 리카코의 관계는 ‘첫사랑’이라는 단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복합체다. 서로에게 관심이 있지만, 그 관심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모른다. 특히 무타는 리카코에게 실망하면서도 그녀를 도와주는 모순된 행동을 반복한다. 이는 감정의 자각은 있지만 표현이 미숙한 청소년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리카코는 고마움을 표현하기보다 무타를 밀어내는 방식으로 감정을 숨긴다. 그녀는 가족에 대한 상처와 고립감, 이방인으로서의 불안정한 정체성을 무타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대신 무심하고 예민한 태도로 일관한다. 이는 자신을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하려는 일종의 자기 방어이자 감정 표현의 방식이다. 무타는 그런 그녀를 보며 당혹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녀의 외로움과 불안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고등학생이라는 나이대는 감정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아직 미숙한 시기다. 이들은 자신들이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뚜렷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오해와 침묵으로 관계를 이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에는 그 애매한 감정들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고백도 없고, 확신도 없지만, 관객은 그들 사이에 무언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 전달하는 첫사랑의 리얼리즘이다.

 

회상 속 성장과 감정의 정리

 

「바다가 들린다」는 대학생이 된 무타가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당시에는 설명할 수 없었던 감정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정리되기 시작한다. 무타는 리카코에게 느꼈던 감정이 단순한 반감이나 정의감이 아닌, 복잡한 애정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그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리카코 역시 무타를 떠올린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무타에게 보여준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며, 그때 느꼈던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비로소 정리한다. 그녀의

회상 속에는 후회와 아쉬움이 묻어난다. “그 사람이 나에게 했던 말, 표정, 행동이 마음에 남아 있다”는 리카코의 내면 고백은,

그녀 또한 감정을 숨기고 살았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 작품은 감정의 자각과 정서적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무타와 리카코는 단지

좋아했다는 감정을 넘어서, 서로의 감정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성숙함을 갖게 된다. 이 작품은 화려한 사건이나 뚜렷한 결말 없이도, 감정의 흐름만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바다가 들린다’는 대사는, 결국 마음속에 남아

있던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울려 퍼지는 순간을 상징한다.

「바다가 들린다」는 사춘기 특유의 감정 변화와 미숙한 표현,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자각하게 되는 첫사랑의 의미를 섬세하게

담아낸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은 특별한 고백이나 결말 없이도, 주인공들의 감정 흐름만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또는 나의 지난 청춘 속에도 비슷한 감정이 있었다면,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그 감정을 다시 마주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